우봉식 의협 정책연구원장 “전문성 없는 구급대원 때문”
소방청 “구급대원, 자격증 소지한 전문 인력” 반박

대한의사협회. [이창환 기자]
대한의사협회.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구급차 안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거나 해당 환자를 수술할 전문의가 부족해서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라 불리는 문제를 두고 심각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정책연구원장은 구급대원의 ‘전문성’ 결여로부터 이어진 판단력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에 소방청은 설명자료에서 “구급대원은 전문 인력”이라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더불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응급실로 찾아오는 경증 환자의 이용을 자제하는 등의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5월 경기도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숨졌다. 구급대는 현장에서 10분 만에 환자를 구조했지만, 수술 가능한 중환자 병상이 없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도 대구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청소년이 응급실을 전전하다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거나 해당 환자를 수술할 전문의가 없어 발생하는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년간 전국 구급차 재이송 사례는 3만7000여 건이었다. 사유로는 전문의 부재가 31.4%로 가장 많았고, 병상 부족이 15.4%로 뒤를 이었다.

성인 10명 중 8명 의대 증원 공감 “응급실 뺑뺑이 심각”

이 가운데 성인 10명 중 8명은 의대 인력 증원을 통한 의사 인력 확충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해 12월20일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을 통해 20대~60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의사 인력 확충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가 41.7%로 가장 높았고, ‘매우 필요하다’가 33.1%, ‘보통이다’ 17.8%, ‘필요하지 않다’와 ‘전혀 필요하지 않다’가 각각 5.2%, 2.2%로 순위를 이뤘다.

의사 인력 부족을 체감하는 이유로는 ‘응급실 뺑뺑이’가 27.0%, ‘소아과 오픈런’이 22.1%로 가장 많았다. 이렇듯 일각에서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의대 인력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증원 반대하는 ‘의협’, “뺑뺑이, 소방대원 탓”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대 인력 증원’에 반대하는 입장. 지난 4일 이필수 의협 회장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료계 신년하례회에서 “의대 정원 증원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앞서 지난해 12월29일 신년사를 통해 “무분별한 증원을 막으려면 안타깝게도 투쟁 강도를 높여나갈 수밖에 없다”라며 “의협의 정책 기조는 정부가 증원 계획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지난해 12월4일 발간된 의협 계간지 ‘의료정책포럼’ 시론에서 응급실 뺑뺑이는 119 소방대원의 책임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응급실 뺑뺑이는 과거 우리나라에 응급환자 분류·후송을 담당하는 ‘1339 응급콜’이 법 개정에 따라 119로 통폐합되면서 생긴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 개정 이후 전문성 없는 소방대원이 응급환자를 대형병원으로만 보내니 경증 환자가 응급실 내원 환자의 90% 가까이 차지하게 됐다”라며 “이 때문에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뺑뺑이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청 “119 구급대, 전문성 검증됐다”… ‘정면반박’

소방청은 지난해 12월7일 설명자료를 통해 우 원장의 주장에 정면 반박했다. 소방청은 “119와 1339의 통합은 응급환자 발생 시 이원화된 응급의료 신고전화로 인한 국민 혼선을 방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결정되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급대원 1만4060명 중 간호사와 1급 응급구조사가 전체 68.8%로, 119구급대는 자격·면허를 소지한 전문 구급대원이 응급환자를 5단계로 평가·분류해 치료 가능한 적정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라고 우 원장의 ‘전문성 결여’ 주장에 반박했다.

또 소방청은 “2018~2019년 기준 응급실 내원환자 가운데 119구급대를 이용하는 비율은 16.4%”라며 “응급실의 과밀화 원인을 해소하고, 119구급대가 이송하는 응급환자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워크 인(직접 응급실로 찾아오는 경증 환자)’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는 등의 조치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덧붙였다.

소방청 관계자는 지난 5일 취재진에게 “화재 진압 대원이 구급차를 탑승하는 구급대원이 되고 싶다면 2급 응급구조사 이상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며 “의협의 자료는 (구급대원이) 전혀 전문적이지 않다고 나왔지만, 전문 인력이 맞다”라고 밝혔다.

정부, 문제 반복 않도록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20일 제8차 중앙응급의료정책추진단 회의를 열고 응급의료기관의 부적정 수용곤란 고지 관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방자치단체에 관리 지침을 마련하도록 한 셈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6월부터 의료·환자·지자체 등 각계 단체가 참여하는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관리 협의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날 회의에서 검토된 표준지침은 119구급대 등의 응급환자 이송 시 응급실 환자 수용 능력을 확인하는 절차와 수용이 곤란할 경우 사유를 고지하는 방법 등을 담고 있다.

복지부는 지침이 확정되면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수용곤란 고지 관리 지침을 수립하도록 안내할 예정이다. 아울러 응급환자를 다른 인접 시·도 병원에 이송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부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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