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무슨 재주를 부리든지 내 마음이 동하면 이 돈을 다 가져도 된다. 그런데 너희가 춤추는 동안 나는 10초마다 지폐 한 장씩을 덜어 낼 것이다. 10초다. 그러니까 1분이면 6장이 없어진다. 10분이면 60장, 17분 안에 발기를 못 시키면 한 푼도 가져 갈 것이 없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낯 뜨거운 내기였다.
- 이런 수모까지 당하면서 기생 노릇을 해야 하는가.
- 왜놈들은 세상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괴한 짓을 하는 동물이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야마모토가 회중시계를 쥐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황매가 두 손으로 대좌의 코 앞에서 몸을 흔들었다.
“10초!:
야마모토가 1원을 빼냈다 이제 99원이다.
18. 대좌가 혼비백산
“큐주 핫지.(98)”
10초가 흐르자 또 한 장을 덜어냈다. 황매의 몸놀림이 더욱 빨졌다. 그러나 대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은실이가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온 몸이 굳어지고 턱이 덜덜 떨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야마모토는 아랫도리를 황매에게 맡긴 채 눈은 나신이 된 은실의 몸매를 훑어보느라 눈알이 바쁘게 움직였다.
“규주 나나.(97)”
다시 1원이 빠져 나갔다. 권번 기생의 하루 밤 꽃값 2원 50전은 25초면 없어진다.
“어째 기술이 시원치 않구나. 오이, 안되겠으면 후배한테 양보하지.”
야마모토는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황매를 슬슬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나나주 이찌.(71)”
황매는 나이가 서른을 넘겼지만 그래도 대구 권방의 행수(行首) 기생이 아닌가. 행수 기생이란 그 무리의 수석을 말한다. 남자와 잠자리를 어디 한두 번 다루어 봤겠는가.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마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과 권력, 거기다 내지인이라는 특권까지 가지고 있는 일본군 대좌 야마모토가 아닌가. 내지인이란 일본 본토 출신 일본인을 말한다.
조선 땅에서 이보다 더 막강한 사나이가 어디 있겠는가.
“로꾸주 산,(63)”
이제 남은 돈이 절반으로 치닫는다.
황매는 비상한 수단을 동원했다. 바닥에 납죽 엎드리고는 머리를 야마모토에 얼굴에 디밀었다. 입술로 공격을 시작했다.
“쭉, 쭈욱.”
안간힘을 쓰는 황매가 불쌍해서 은실의 가슴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대좌의 표정은 점점 실망스럽게 변해갔다.
- 저 놈, 혹시 성불구자는 아닐까.
- 나이 이제 쉰 살 갓 넘긴 정도인데, 저 정도 나이의 남자가...
_ 너무 많은 여자를 상대해서 좀처럼 동하지 않는 놈인가?
은실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속으로 저 물건이 벌떡 일어서면 그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직했다. 분명이 은실이를 바닥에 눕히고 배위에 올라탈 것이다. 그리고 상상하기 싫은 대나무 밭의 오주사 놀이를 실제로 행 할 것 아닌가.
은실은 동욱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안 돼!’
무엇이 안 된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단어가 떠올랐다.
은실이 온갖 나쁜 상상을 다하고 있는 사이에도 황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황매는 입으로 하던 공격에도 적군이 꿈적하지 않자 다시 일어나 쪼그리고 앉았다.
“니주 고.(25)”
이제 지폐는 스물다섯 장, 26원 밖에 남지 않았다.
은실은 더 참을 수가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황매 언니의 팔을 확 잡아당겨 일으켜 세우고 야마모토를 향해 ‘야, 야만인‘ 소리를 지르며 침을 칵 뱉어주고 뒤쳐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농산 권 방장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논개라는 의기를 알겠지. 적장의 목을 껴안고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남강에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던 그 붉은 단심을 생각해라. 네가 오늘 논개는 못될망정 네 몸을 바쳐 조선 독립을 돕는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몸뚱이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마음이 순결하면 곧 모두가 깨끗한 것이다. 훗날 네가 한 기둥서방을 만나 알콩달콩 사랑을 가꿀지 모르는 그날을 생각하며 마음만은 고이 간직해라. 권번 기생이라는 운명은 저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황매의 콧등에는 땀이 송송 배었다. 그러나 황매도 단 1초도 아깝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주 이찌(11)”
“주.(10)”
“큐, 하찌, 나나, 로꾸, 고, 시, 산, 니 땡”
마침내 돈이 다 없어졌다 야마모토는 야비한 웃음을 띠었다. 황매는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황매 언니가 너무 불쌍했다.
“오이, 은시루 차례다.”
야마모토는 돈을 다시 은실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음탕한 기운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앉아서 다리를 쭉 뻗고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당초부터 목적이 은실이였다.
은실은 각오했다.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야마모토 앞에 마주 섰다. 빛나는 나신이 야마모토를 압도했다. 은실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야마모토는 마침내 항복했다.
“요씨, 이거 네가 그냥 다 가져. 그리고 오늘 정성을 다해 봉사 하는거다.”
만족해진 야마모토가 돈 뭉치를 은실이 앞에 던졌다. 그러나 은실이는 꼼작도 않고 부동자세로 선채 일본말 한마디를 했다. 힘차고 또록또록한 일본말이었다.
그 말을들은 야마모토는 혼비백산하여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19. 벗은채로 거수경례
“덴노헤이까!”
은실이 엄숙하고 낭낭한 목소리로 외쳤다. 벌거벗고 보료위에 널부러져 입을 헤벌리고 두 여자의 벗은 몸을 감상하고 있던 야모모토 대좌가 벼락을 맞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몽롱한 꿈에서 제 정신을 차린 것이다.
“덴노헤이까(천황폐하)노...”
은실이 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반복했다.
“핫!”
널부러져있던 야마모토가 벌떡 일어섰다. 부동자세를 취했다.
일본 군국 시대에는 ‘덴노헤이까...’라는 말이 나오면 모든 군인과 신민(臣民)들은 ‘동작 그만’, ‘부동자세’를 취해야했다. 잠자리하던 부부도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해야 할 정도다. 마치 나치 독일 시절 ‘하이 히틀러’라고 하면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던지 간에 중단하고 팔을 들어 올려야하는 것과 같았다.
군인정신으로 꽉 찬 일본 육군 헌병 대좌가 자동적으로 반사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하다.
벌거벗은 채 벌떡 일어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야마모토 대좌의 모습이란 참으로 못 봐줄 가관이었다.
얼굴은 잔뜩 긴장하고 두 손은 차렷 자세로 몸에 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은실은 웃음이 나왔으나 입술을 꼭 물었다. 계속 엄숙한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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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