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실은 경욱이 약 올라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계속 빗나가는 말만 했다. 그러나 꼭 빗나가는 말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목숨을 걸고 조선의 혼을 지켜야 한다는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왔다. 어렸을 때는 그런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도 많이 가졌으나 지금은 독립 운동이 무엇인가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대구로 가죠.”
은실이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기사는 의외로 빨리 돌아가게 되어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향촌동으로 가요.”
은실이 말했다.
“향촌동요?”
운전사가 되물었다.
“무라가미 마찌”
일본 명칭을 다시 대주자 운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실과 경욱은 향촌동에 있는 강호여관 앞에서 내렸다.
“이 여관에 당분간 계셔야겠어요.”
은실은 미리 생각했던 대로 이야기를 했다. 이 여관에서 몸의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있다가 다른 데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며칠만 있다가 만주로 갈 생각인데 그동안 여관비가 문제네.”
경욱이 걱정하자 은실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마련했으니 걱정 마세요.”
두 사람은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방 윗목에 모란꽃이 수놓인 이불과 두툼한 요가 깨끗하게 개켜져 있었다. 따뜻한 다다미 방바닥도 정갈해보였다. 아랫목에는 노란 놋주전자와 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윗옷 벗고 편안하게 앉아요.”
은실이가 경욱의 윗옷을 받아 얌전하게 개서 윗목에 놓았다.
“언제 만주로 떠나세요?”
은실이 그냥 마주보고 앉은 모양이 어색해서 말을 걸었다. 경욱이 그윽한 눈으로 은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늦어도 사흘 안에 가야해요. 돈을 좀 마련해서 황 대장 부대에 전달해야 해요.”
“그럼 언제 대구로 돌아 오세요?”
“언제 올지는 몰라. 영영 못 올 수도 있고.”
은실은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러면 지금 경욱과 마주 앉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갑자기 경욱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욱의 눈을 보았다. 초롱초롱하던 눈에 연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경욱씨!”
갑자기 은실의 말에 물기가 서렸다.
“만주에서는 목숨을 건 일이 많다던데... 이제 언제 만날지 모르는 것 아예요?"
“은실아.”
경욱이 갑자기 은실을 와락 껴안았다.
“경욱씨!”
은실이 기다렸다는 듯이 경욱의 품에 깊이 안겼다. 경욱의 뜨거운 입술이 은실의 입술에 겹쳐졌다.
두 사람의 몸은 서로 붙으려는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겼다. 떨어지면 큰일 나는 사람들 같았다. 은실은 한손으로 경욱의 목을 감고 한 손으로는 치마 고름을 풀었다.
“잠깐만요.”
한참만에 은실이 경욱에게서 떨어지며 치마를 훌렁 벗었다. 이어 속치마 단속곳까지 단숨에 벗어버렸다.
“은실아 왜 이래?”
경욱이 놀랐다. 그러나 그의 눈은 경이로운 관경 앞에 아찔해졌다.
“나는 권번 기생이예요. 어느 때 어느 남자한테 숫처녀 동정을 바쳐야할지 몰라요. 그럴 바에야 경욱씨에게 바치고 싶어요. 오늘 저를 가지세요.”
은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옷을 모두 벗었다. 희고 고운 살결이 눈부셨다. 잘 익은 산딸기 같은 젖꼭지와 사타구니의 검디검은 음모가 경욱의 눈을 찔렀다.
22. 너도 남자인데
은실은 요위에 천장을 바라보고 반듯이 누웠다. 풀어헤친 머리가 검다 못해 윤기까지 났다. 화장발을 잘 받은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더욱 앳되고 탐스러웠다. 갸름한 목 밑으로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어깨도 사랑스러웠다.
반듯이 누워있어도 봉긋한 유방은 탄력을 잃지 않고 솟아 있었다. 기하학적으로 둥근 우유 빛 유방의 한 가운데 아주 작은 분홍빛 유두가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았다. 잘룩한 허리 가운데 숨어있는 작은 배꼽은 보일 듯 말 듯 수줍음을 탔다.
가는 허리에서 갑자기 펑퍼짐하게 퍼진 골반이 성숙한 여자의 몸매임을 웅변하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매끈한 아랫배의 둔덕은 적당히 솟아 중요한 곳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밑에 가지런히 시작된 음모는 계곡에 이르러 야생의 숲을 이루었다. 비밀의 샘을 둘러싼 수풀을 다시 하얀 두 허벅지가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날렵하게 쭉 뻗은 두 다리는 정말 조각의 한 부분 같았다.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발랄한 나체는 경욱의 눈을 가득 채웠다. 마른 침을 삼켰다.
순결의 극치는 욕정의 극치로 치닫고 있었다.
“경욱씨. 부끄러워 죽겠어요. 어서 어떻게 해보아요.”
“은실아!”
경욱은 말이 막힌 것 같았다. 황홀한 육체 앞에 정신이 아득했다.
“경욱씨! 아무 부담도 갖지 마세요. 어차피 어느 건달에게 받쳐야 할지 모르는 몸뚱이여요.”
“은실아!”
경욱은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경욱씨. 아무 것도 아니여요. 나는 뭇 사내의 품에 안길 몸이랍니다. 나 한번만 도와주세요. 왜놈에게 먼저 바치기는 싫어요. 나를 버려도 좋아요. 조선 사람이 나를 첫 번째로 가졌다는 것만으로 좋아요. 경욱씨 말고 부탁할 다른 남자가 없어요.”
얼어붙은 듯 꼼짝도 않던 경욱이 누워있는 은실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를 숙여 은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은실은 누운 채로 엎드려 있는 경욱의 저고리를 벗겨냈다. 늠름한 사나이의 윗몸이 드러났다. 넓은 가슴에는 짤막한 털이 소복이 나있었다.
그러나 경욱은 바지를 벗는 대신 은실을 조용히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속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단속곳, 속치마, 속적삼, 저고리....
“바보. 왜 이러는 거예요?”
은실은 경욱이 하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옷을 다 입히고 난 경욱은 다시 은실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은실씨, 고마워요. 그러나 나는 이미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니 은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오.”
“나하고 같이 부부가 되자는 뜻은 아니예요. 경욱씨는 조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받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아요. 다만 나는 경욱씨의 체취 한쪽을 내 몸에 간직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은실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경욱이 손으로 눈물을 훔쳐 주었다.
“은실씨. 권방 기생 그만 두어요.”
“예?”
“떳떳한 조선 여자로 결혼하고 애기 낳고 부모님 모시며 편안하게 살아요.”
경욱의 눈에도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그게 말이 되요? 권번에 매인 기생 족보를 파낼 방법은 없어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해 보세요. 안되면 산골 깊숙한 곳으로 도망을 가요. 아니 나하고 간도로 가요.”
은실은 아무 말도 않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
“기분 참 이상해요. 잠자리에서 남자한테 차인 여자의 심정 아세요?”
“차인 게 아니고 아껴 둔 거요. ㅋㅋㅋ"
“우리 밖으로 나가요. 활동사진이나 한판 보아요.”
은실과 경욱은 여관 밖으로 나왔다. 은실은 어쩐지 경욱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지 못할 것 같았다.
여관 바로 옆 건물은 호락관이라는 영화관이었다. 영화관의 화려한 간판이 은실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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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