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려고 했다. 방문이 곧 부서질 것 같았다. 수원은 전화를 끊고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창 쪽에 완강기가 있었다. 화재가 나면 비상 탈출용으로 쓰는 것이었다. 15층이긴 하지만 잘만 타고 내려가면 탈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이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나!”옥상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온 특공대원이 방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수원은 얼른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특공대원이 유리창을 깨고 날렵하게 방안으로 들어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19 18:44
-
“비행기가 어느 쪽에서 날아왔습니까?”서생면 쪽에서 날아와서 월내 쪽으로 가다가 되돌아 왔습니다.”“서생면 면사무소 쪽을 말하는 거군요. 원자로를 기준으로 보면 동북쪽이지요. 반대쪽은 남쪽이고요. 임랑 해수욕장이 근처에 있지요.”문동언 경위가 말했다.“거긴 비행장이 없는데... 바다에서 비행기가 뜰 리도 없고.”손진훈 과장이 혼잣말을 하다가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비행기에 조종사가 없었던 게 확실하군요?”“조종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비행기에서 한 사람이 탈출한 것은 틀림없어요. 비행사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혹시 비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15 08:49
-
이어서 육군 지역 사단 작전 참모와 서울의 경찰청장, 부산시장이 대책실에 들어왔다.“현장 주변 1킬로미터까지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 통제를 했습니다.”사단 참모가 보고했다.“경찰에서도 특공대가 대기 중입니다. 만에 하나 방사능 오염이 있을 것에 대비해 주민을 소개시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경찰청장이 보고했다.“다행히 방사능 오염은 없는 것 같습니다.”김종호 사장이 말했다.“자폭한 조종사의 흔적은 찾았나요?”국정원 부산 지부장이 부산 경찰청장을 향해 물었다.“아직, 현장 감식을 못하고 있습니다.”경찰청장이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다가 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2.05 17:44
-
남자는 비행기 조종석에 올라탔다.“출발한다.”“굿 럭!”여자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땡큐. 아홉시에 거기서 만나.”남자가 시동을 걸자 프로펠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우렁찬 소리를 냈다. 10초쯤 지나자 비행기는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골프장 초원을 내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8번 홀 페어웨이가 다 끝나기 전에 사뿐히 날아올랐다. 숙련된 조종 솜씨였다.경비행기가 무사히 날아오르자 페어웨이에 남아 있던 남녀는 재빨리 지프를 몰고 카트 길을 따라 골프장 밖으로 사라졌다.수원은 일찍 일어나 식사도 거른 채 회사로 달렸다. 오늘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29 16:09
-
성격이 우직하고 충성심이 강한 김형욱은 1974년 4월 한국을 떠나 미국에 망명을 요청했다. 그리고 박정희 독재 정권을 맹렬히 비난했다.육사 8기로 5?16 쿠데타에 참여한 김형욱은 저돌적이고 공작에 능한 인물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시절 인민혁명당 사건을 발표하면서 혁신계 인사, 언론인, 교수, 학생 등 4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시키기도 했다.그러던 김형욱이 이번에는 박정희의 인권 탄압과 유신 독재에 화살을 겨누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미국을 속이고 박정희의 밀명을 수행하기 위한 망명 위장이었다.한국과 핵에 관한 협정을 체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22 15:55
-
영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국가에 대한 신념, 원전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심지어 연인한테조차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성민과 대조적이었다.수원은 몇 주 전에 들은 소문이 생각났다. 회사 내에 핵무기 개발을 옹호하는 비밀 동아리가 있다는 말이었다. 영준이 그 동아리의 주축 멤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신념과 자부심이 방향을 잃고 질주하면 맹목적 애국심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다 왔습니다.”수원은 영준과 함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영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15 18:38
-
“고정 IP는 뭐고 유동IP는 뭐예요?수원이 궁금해서 물었다.“글을 올릴 때 사용한 컴퓨터가 고정 IP와 연결된 것이 있고, 올릴 때 마다 임시 IP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유저들은 그런 구분을 잘 못하지요.”“시간이 급박하지 않나요? 지난번 폭발물은 조기 발견해서 무사했지만 이번에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요.”“물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액체 폭탄이 냉각수 케이블에 들어가서 폭발해도 정말 방사능 누출 위험이 없을까요?”허견 수사관도 원전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듯했다. “취수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1.01.08 16:01
-
영준과 헤어진 수원은 천천히 걸어 사무실로 돌아오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김형욱과 박정희, 그리고 아버지 한용국. CIA와 KGB, 대한항공 902편. 아나톨리와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대한민국. 수원은 마치 퍼즐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단어가 아버지의 죽음을 푸는 열쇠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수원은 벌떡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메모지를 꺼내 글씨를 썼다.A. N. A. T. O. L. Y수원은 알파벳 일곱 글자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수원은 오후에 정기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31 16:57
-
정세찬은 맥주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박정희는 곧바로 미국에 있는 한국계 핵물리학자 2백여 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등 미사일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1980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핵무기를 선보였을 겁니다. 이런 계획이 담긴 문서가 최근에 발견되었거든요.”“정말이에요?”수원이 고개를 갸웃했다.“1979년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암살한 것도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이 사주한 일이란 말이 떠돌 정도입니다.”“어머!”유미가 놀랐다.“1971년에 핵무기 제조 계획을 세웠고 19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24 17:38
-
수원은 책상 정리를 대강 해 놓고 잠시 자리에 앉아 쉬었다. 컴퓨터를 들고 와서 선까지 다 연결해 주고 간 영준이 은근히 고마웠다. 무뚝뚝하지만 필요한 때는 말없이 도와주는 사람이었다.“오늘 점심 제가 살게요. 괜찮으시지요?”점심때가 되자 수원은 영준에게 전화를 걸어 제의했다. 그러나 영준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았다.“벌써 부장님하고 약속이 돼 있어서 안 되겠습니다.”수원은 더 이상 말을 못 붙이고 전화를 끊었다.오후 세 시쯤 되어서 영준이 사무실로 불쑥 찾아왔다. 수원은 점심 초대에 응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러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18 15:24
-
비행기는 내가 우려한 것처럼 극점을 향해 가지 않고 거의 160도 정도 돌아 소련 영토를 향하고 있었다.그 때 갑자기 날개 오른편 창으로 이상한 비행체가 나타났다. 얼른 보아도 소련 전투기 수호이 15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상황을 빨리 파악했다.‘우리는 소련 영공에 들어섰다. 비상 출동한 소련 전투기는 영공 침범으로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만약 민간 비행기를 귀순시키거나 착륙을 유도하려 했다면 여객기의 왼쪽에 전투기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게 ICAO(국제민간항공기구)의 규정이다. 그런데 오른쪽에 전투기가 나타났다는 것은 적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11 17:06
-
정확하게 열한 시가 되자 키가 작고 목이 짧은 여자가 후지엘렉트릭 사무복을 입고 나타났다.“나쓰에 상, 고찌라데쓰.”유미가 손을 들고 일어서자 여자가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수원도 일어서서 함께 나쓰에를 맞았다.“바쁘신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를 건 고유미입니다. 여기는 제 친구 한수원이고요.”“모리무라 나쓰에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나쓰에는 한국말로 공손하게 인사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숙이며 명함을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기술 담당 이사 대우라고 직책이 쓰여 있었다. 수원과 유미도 명함을 건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2.04 17:44
-
“서로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가 봐요?”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수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스미스는 미국 있을 때 만났고, 소피아와 빅토르 박사는 여기서 스미스의 소개로 처음 만났어.”아토믹캐나다, 프랑스히시떼, 웨스턴감마. 모두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회사들이었다. “치어스!” 소피아 빌리에가 활짝 웃으며 건배를 청해왔다.그제야 수원은 소피아 빌리에를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났다. 2년 전 미국 웨스팅하우스 도서관에서 성민과 밀회하던 여자였다. 붉은 머리에 흰 피부. 웃을 때 한껏 드러나는 잇몸.‘스미스의 소개로 오늘 처음 만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1.27 09:52
-
이후부터 각국 대표는 자국의 원자력발전 기술 홍보에 열을 냈다. 미국이 먼저 나섰다.“우리 미국은 원자력 104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요.”“스리마일 원자로 사고의 폐해가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프랑스 대표가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이미 30년 전 일입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은 안전도를 우선으로 하는 기술을 개발해 그 어느 나라보다 안정성에 있어서는 최고를 자랑합니다.”“우리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협력체제로 원자력 발전을 운영해 왔는데 얼마 전부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1.20 16:04
-
이틀 후, 빈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성민은 오스트리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역사며, 예술이며, 정치에 관해서도 성민은 놀랄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세계원자력기구가 빈에 있지만 막상 오스트리아는 원자력 발전 시설을 반대하는 반핵 국가야.”“그래요?”수원이 호기심을 보이자 성민이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고리 원전이 건설되던 1978년에 오스트리아에서도 최초의 원전이 완공되었지. 도나우 강변의 츠베텐도르프 원자력발전소야.”수원은 왜 중요한 일은 1978년에 다 몰려 있나 하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1.13 09:17
-
“한수원 박사.”그때 강병욱 정책처장이 들어오면서 수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아, 처장님! 몸은 이제 다 회복되셨어요?”“꿰맨 곳 실밥은 모두 뺐고, 이제 잘 아물고 있어.”“그 정도만 다치셔서 불행 중 다행입니다.”성민이 인사를 했다.“덕분에 별명을 하나 얻었네.”“뭔데요?”수원과 성민이 동시에 물었다.“프랑켄슈타인 강!”강 처장의 말에 모두 큰소리로 웃었다.“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군.”강 처장이 시계를 보면서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유미와 정세찬은 손을 들어 보이며 자리를 떴다.송기섭 전무가 주재한 그날 회의의 주제는 역시 빈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1.06 09:35
-
보트는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달렸다. 차가운 바닷물이 얼굴에 튀었다.얼마나 달렸을까? 보트가 멎었다.신용우는 다시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보트에서 내렸다.“여기가 어딥니까?”신용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우리 어머니가 다쳤다는 건 거짓말이죠?”“그걸 지금까지 믿고 있었어?”“순진하군. 우리가 타깃을 잘 골랐어.”남자 둘이 빈정대며 킬킬 웃었다.잠시 후 육중한 철문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창고인 듯했다. 남자들은 신용우를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바람에 문턱에 발이 걸려 신용우의 몸이 기우뚱했다.“옷을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0.30 16:03
-
얼마 후 문동언 경위가 수원을 찾아왔다. 주영준 차장과 조민석 보안과장도 함께 왔다.“안녕하세요? 폭발물 사건과 이래저래 관련이 많으시네요.”문동언 경위가 웃으면서 인사말을 했다.“제가 또 관련된 일이 있나요?”수원은 불편한 마음으로 물었다.“아닙니다. 오늘은 아나톨리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왔습니다.”“제가 도움이 될까 모르겠네요.”어느새 조민석 과장이 주스 석 잔을 가져다 놓았다.“아나톨리에 관한 자료를 많이 수집해 두셨다고 들었습니다.”“아, 네.”수원은 인터넷 판도라 사이트에 접속해 아나톨리 게시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아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0.23 16:21
-
해운대 경찰서 수사본부 문동언 경위 앞에 네 번째로 불려온 이경만은 수사팀이 압수한 자료와 증거물을 들이대고 추궁하자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장 사장이 부탁해서 도와준 것뿐입니다.”“낚시 동호회 사이트에 가입하면서부터 알게 된 것이 맞습니까?”“그렇습니다.”“언제 가입했고 몇 번이나 모였나요?”문동언 경위는 진술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서너 달 전입니다. 참돔 낚시를 두 번 따라 갔습니다.”“핸드폰 복사는 몇 개나 했습니까?”문동언 경위가 발신용 리모컨을 내놓으며 말했다.“세 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똑 같은 번호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0.16 16:35
-
“됐습니다.”소령의 말소리가 떨어지자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제 어떻게 합니까?”이종문 본부장이 물었다.“냉동이 풀리기 전에 파괴시켜야 합니다.”“파괴시킨다고요?”경찰청장이 물었다.“예. 그렇습니다.”소령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종문 본부장에게 물었다.“저놈을 우리 부대에 가져가서 처리하는 게 원칙입니다만 워낙 민감한 폭탄이라 여기서 처리해야겠습니다. 가는 동안에 냉동이 풀릴 가능성도 있어서요.”“여기서 터지면 큰일 아닙니까?”이종문 본부장의 얼굴이 굳었다.“사방 50미터만 확보하면 됩니다. 저기 주차장 옆 공터를 사용해야겠습니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10.08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