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런 사람 몰라요. 우리는 하루 풀칠하기도 바쁜 불쌍한 노동자들이에요.”
“거짓말하지 마라, 우린 다 알고 왔어. 너희들은 빨갱이 조직에 동조하는 운동권 공순이들이란 것도 다 알아. 혼나기 전에 아는 대로 대는 것이 좋을 걸.”
조장이 능글맞게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우리는 살을 깎이고 피를 받치며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있는 이 나라의 가장 착한 노동자란 말입니다. 이 나라가 누구 덕택에 유지되고 있는 지나 아세요?”

“아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이것들이 단단히 물든 년들이군. 어디 혼 좀 나 봐라. 얘들아 이년들을 모조리 홀랑 벗겨라!”

조장이 이 여자들이 보통 여공들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사나이들이 달려들어 우악스럽게 여자들의 옷을 벗기려고 들었다.
“어마!”
“이 나쁜 자식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다. 그러나 억센 남자의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내복만 입고 있던 여자 하나가 금방 발가벗겨졌다. 여자는 두 팔로 유방을 가리고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만!”

아까부터 요원들에게 따지던 깡마른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요원들이 주춤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다 벗어주마. 이 개 같은 놈들아 실컷 봐라!”
여자는 스스로 내복을 다 벗어버렸다. 깡마른 여자가 팬티까지 모두 벗어버리고 완전한 나신이 되자 다른 네 여자들도 모두 벗어버렸다.

다섯 여자는 모두 발가벗은 채 앉거나 서 있었다. 그래도 여자는 역시 여자라 두 손으로 치부만은 가리고 있었다.
“모두 한 줄로 일어서!”
젊은 요원이 구경거리 생겼다는 듯이 여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벽 쪽에 한 줄로 서!”

요원이 여자들이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내복이며 잠옷들을 발로
걷어차면서 말했다. 젖가슴이 절벽인 여자로부터 볼륨이 대단한, 풍만한 여자도 있었다. 살결이 백옥 같이 흰 여자로부터 까무잡잡한 여자도 있었다. 유방의 모양도 모두 갖가지였다. 핑크 빛으로부터 아예 색깔이 없는 것 같은 여자도 있었다. 유두가 파묻혀 오목한 여자도 있었다.

“모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엉거주춤 선 채 두 손으로 치부만을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는 여자들을 보고 조장이 말했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명령만은 들은 척도 않았다.
“이것들이⋯”

“철썩!”
조장이 깡마른 여자의 뺨을 때렸다.
“아이쿠”
그 방 여자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여자들은 모두 손을 머리에 얹고 똑바로 섰다.

“흠!”
세 사나이는 다섯 여자의 아랫도리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며 신음 같은 소리를 냈다.
무성하고 검은 숲에서부터 시늉만 나 있는 삼각지도 있었다. 여자의 몸이란 참으로 다양하고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며 사나이들은 더러운 침을 흘렸다.
 
56. 가련한 나체 여인들은...

“실컷 구경해라! 이 더러운 놈들아! 우리 몸뚱이는 어차피 네놈들 같은 비겁한 자본주, 독재자
가 짓밟아 다 썩은 지 오래다.”

깡마른 여자가 두 손을 머리에 얹은 채 악을 썼다. 깡마른 체구와는 달리 피부가 눈처럼 희었다. 흰 피부에 비해 입술이 붉고 유두도 진한 핑크 빛이었다. 비너스의 언덕도 검고 윤기가 났다. 여자는 가랑이를 찢어질 만큼 크게 벌리고 두 다리를 휘저으며 악을 썼다.

“잘 들어! 너희들이 백성규 일당을 어디에 숨겼는지 말하지 않으면 그 몸뚱이가 온전히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백장군 일당이 여기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누가 댈 것이냐? 너냐?”
조장이 볼륨 큰 여자의 유방을 움켜쥐면서 말했다.
“퉤!”

여자가 조장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백성규가 누군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몸뚱이를 갈가리 찢어도 모르는 일을 댈 수는 없다.”
깡마른 여자가 다시 또박또박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여자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악에 받쳐 눈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요원들을 향해 모두 한마디씩 퍼부었다.
“당신들은 아내도 여동생도 없어요? 사람을 이렇게 개돼지 취급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으니 이 나라 백성의 딸들이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 것 아니야?”

“실컷 봤으면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해! 너희들 바지도 모두 벗겨줄까?”
“정신대가 뭐 일제 강점기 시대에만 있는 건가? 지금 이 나라가 일제 보다 나은 게 뭐 있어?”
여자들이 모두 악을 쓰자 요원들이 오히려 어리벙벙해졌다. 벌거벗고 유방을 덜렁거리는 모습이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 모두 위장 취업한 년들이지. 내가 다 알아! 너희들 대학생이지? 이 공단 무너뜨리려고 위장 취업한 년들 맞지?”
조장이 많이 듣던 이야기를 했다.
“이 년들을 모조리 끌어내 트럭에 실어!”

그때 장교인 듯한 사복이 들어와 명령했다. 순식간에 벌거벗은 여자들이 끌려나가 트럭에 실렸다. 2층, 3층에서도 여자들이 끌려 왔다. 그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연립 아파트는 소위 벌집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여자 노동자들이 한 방에 대 여섯 명씩 모여 자취하는 싸구려 하숙집인 셈이다. 수입이 적은 그녀들은 이렇게 모여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고 있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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