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40여 명의 여자들이 끌려 나와 지붕이 씌워진 트럭에 태워졌다. 그 중에는 가지 않으려고 트럭 바퀴 밑에 들어가 들어 누은 여자도 있었다.
여자들은 개처럼 질질 끌려 나와 차에 태워졌다.
“분대장님 이상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때였다 머리를 짧게 깎은 청년 하나가 달려와 조장인 듯한 사복에게 보고를 했다.
“뭐야?”
“지하실을 발견 했습니다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 열어보진 못했는데 그 곳이 수상합니다.”
“그래? 가보자. 너희들도 따라와.”

그가 앞장서서 다시 연립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여자들을 실은 트럭은 어딘 가로 떠났다.
그들은 아래층 지하실로 들어갔다. 매캐한 연탄 냄새가 났다. 연탄과 보일러 시설이 지하실의 반은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 문이 있습니다.”

청년이 연탄이 키 높이로 쌓여진 곳 옆의 벽을 가리켰다. 정말 얼른 보면 몰라도 자세히 보면 그것이 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 안전장치를 풀어!”

그때 장교인 듯한 자가 뒤따라 들어 왔다. 조장이 긴장했다. 그가 문을 잡아당겨 보았다. 덜컹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
“발로 차서 열어! 모두 조심해!”

한 사람이 힘껏 문을 차버리자 덜컹하고 열렸다. 누군가가 플러시를 비쳤다.
“누구야? 모두 나와!”
안에서 인기척이 나자 장교가 소리쳤다. 금세 총을 든 요원들이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이리 나와!”

남자 세 사람이 안에서 끌려 나왔다. 모두 창백한 얼굴에 수염이 길게 자라 있었다.
“저 안을 샅샅이 뒤져봐!”
장교의 명령을 따라 지하실 안을 샅샅이 뒤지던 요원들이 서류철 같은 것을 잔뜩 가지고 나왔다.

“이것은 모두 본부로 가지고 간다.”
장교는 끌려 나온 남자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 사람은 나이 좀 들어 보였지만 두 사람은 아직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당신들은 뭐야? 왜 거기 숨어 있었나?”

장교가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를 보고 물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넓은 이마와 뾰족한 턱이 그를 지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 분은 우리 선생님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젊은이 중에 한 사람이 장교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키가 작고 목이 짧았으나 그도 눈만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너희들이 학생들이라고? 운동권 학생들이란 말이군.”

장교가 지하실에서 압수해 온 물건들 중에 유인물 몇 가지를 들춰 보이며 말했다. 그것은 정부를 비판한 전단들이었다.
“이자들도 모두 일단 데리고 간다.”
“우리를 무슨 죄목으로 연행합니까? 그리고 당신들은 도대체 정체가 뭐요?”
나이든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들 같은 얼빠진 빨갱이들 잡아다가 혼내는 사람들이야. 당신들 모두 백성규의 부하들이지? 백성규가 있는 곳을 댄다면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지.”
장교가 나이든 사람을 보고 점잖게 말했다.
“말하지 않았소. 우리는 고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요. 나는 이 두 학생의 선생이요. 우리는 백성규가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모두 트럭에 실어!”
이렇게 해서 세 사람도 연행되었다.
비록 백성규는 체포하지 못했지만 그가 은신했던 곳에서 하수인들로 보이는 남자 세 명과 들러리 세력인 여자 근로자들을 연행해 온 합동 수사 본부는 상당히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여자 근로자들은 다섯 개조로 나누어 취조가 시작되고 세 남자는 고위 수사관들이 직접 맡아서 심문을 했다. 수사 상황은 즉각 비대위와 김교중 총리에게 보고되었다.
“40대의 지도자로 보이는 남자와 휴학하고 수배중인 민독련 소속 학생 두 명이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백성규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유 정보 국장이 총리에게 보고했다.
“그 놈들이 쉽게 불 것 같소? 어림도 없는 소리 마시오.”

아직도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박상천 해군장관이 곁에 있다가 빈정댔다.
“민독련 소속 학생이라고? 민독련은 와해되었다고 하지 않았소?”
총리가 정일만 장관을 보고 물었다.
“일단 해산하고 남독련을 만든다고 했습니다만...”
남독련이란 ‘남한 독립 추진 대학생 연합회’의 약칭이었다.

민독련 즉 민주독립 추진 학생 연합이나 남독련 등은 모두 민독추 즉 민주독립 정부 수립 추진 위원회와 횡적 종적 유대 관계가 있다고 정보 기관들은 판단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뿌리 격이며 상층 지도부인 민독추의 집행 위원회와 남독련이나 민독련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따라서 이 세력권에 있는 여성 근로자나 남학생들을 잘 심문하면 무엇인가는 건질 수 있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서 중에는 민독추의 지령문도 있었습니다. 일정한 날짜를 지정하고 그날 남독련과 민독련 소속 전 학생들과 노동 단체가 궐기해야 한다는 내용이랍니다.”
서종서 내무 차관이 메모지를 들고 총리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 날짜가 언제야?”

“그게 글쎄... 일주일쯤 전 날짜로 되어 있습니다.”
“일주일 전에 아무 일도 없었잖아?”
김교중 총리가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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