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경장은 재미있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송전면뿐만 아니라 군내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이야. 그분이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학교 뒷산을 모두 개간했어. 거기에 무공해 채소와 과일을 재배해서 소득을 상당히 올리고 있는데 그 소득으로 학교 시설도 확충하고 학생들 장학금도 주고 있어. 면에서 벌어지는 행사 때마다 찬조금도 적지 않게 내놓고, 다리도 놓아 주고 노인정도 지어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도 사 보내고..."
김 경장은 자기만 아는 비밀을 알려 주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어 은근스럽게 말했다.
"교장 선생님 이름이 문..."
민기가 교장 책상 위 명패에서 얼핏 보았던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니까 김 경장이 얼른 말을 나꿔챘다.
"문중훈 씨 아닌가, 문중훈. 작년에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던..."
문중훈이라..., 듣긴 들었던 이름 같았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이래 일부러 고향 소식을 안 듣고 고향 사람을 피했던 민기로서는 그에 대한 기억이 금세 떠오르지 않았다. 서울 성동구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민기는 그때 잠시 고향인 청양, 예산에선 누가 후보에 올랐는가 명단을 살펴보았으나, 웬 시골 선거구에 후보가 여섯 명이나 되어 대충 이름만 훑어보고 쓴 웃음을 지었던 생각이 났다.
"자네, 이 학교 출신이라고 했지? 언제 여기서 학교를 다녔지?"
"1973년에 입학해서 중학 마치고는 바로 대전으로 갔지요."
"그러면 문 교장을 알 텐데 그래. 그 양반 그땐 음악 선생이었다던데."
그제야 민기의 머릿속에 음악 선생 문중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시골 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생이었다. 키는 중키였으나 유난히 흰 피부에 짙은 눈썹, 새파란 면도 자국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인상을 오래 남게 해 주었다.
인력이 모자라 문 선생은 음악이 전공이면서도 취미로 배웠다는 원예까지 가르쳐야 했다. 그는 과목별 교사조차 변변히 갖추지 못한 송전 학교의 가난에 늘 불만을 늘어놓곤 했다.
"피아노가 있어야 가르칠 맛이 나지. 음악실도 없는 학교에서 음악 선생 노릇하자니 다른 선생들 눈치 보여서 원..."
문 선생이 투덜거릴 때마다 학생들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학교의 가난이 마치 자기들 탓인 양 송구해 했다.
"그럼 여 이사장과 문 선생이 결혼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러고 보니 감수성 예민하던 중학 시절 유난히 눈에 들어오던 장면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문 선생은 이사장 아들 오정식의 농업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이사장 사택에 불려간 것이 아니었다. 옷에는 부로우치를, 목에는 목걸이를, 귀에는 귀걸이를, 팔에는 팔찌를 무거워 보이리만치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여 이사장은 집 꾸미기에도 열중이어서 원예를 가르치던 문 선생이 이사장 사택의 정원 조성 임무를 맡게 된 것이었다.
농업 실습 시간마다 뙤약볕이 자기의 머리를 돌게 만들 것이라고 불평하던 문 선생은 어쩐 일인지 이사장 사택에서 하는 정원 작업만큼은 신명나서 해냈다.
대추나무와 사과나무 두 그루, 가지도 안 다듬은 향나무 몇 그루가 제멋대로 자라고 있던 이사장 사택의 뜰에는 융단 같은 잔디가 깔렸고 장미, 백합, 글라디올라스, 칸나, 라일락 등 서양 꽃들로 가득 찼다. 그 뜰에 잔디를 깔고 아름다운 꽃으로 단장하기 위해 학생들의 점심시간마다 수시로 동원되었고, 방과 후에는 논두렁에 나가 뗏장 떠오는 일을 해야 했다. 오정식이 공부할 시각이면 학생들은 그나마 크게 떠들지도 못하고 묵묵히 삽질을 해야 했다.
가끔가다 이사장이 격려차 나타나기도 했다. 나이가 마흔에서 한두 살 넘었다는 이사장은 스물아홉 먹은 처녀 가정 선생보다 더 젊어 보였고, 칸나꽃처럼 화려하고 장미꽃만큼이나 범접하기 어려웠다.
뗏장을 뜰에 입힐 때는 시큰둥하던 이사장의 시선이, 논에 댈 물도 없이 가물었던 그 해, 학생들이 모래까지 섞여 올라올 정도로 열심히 펌프질을 해서 물을 길어다 뿌려 준 덕택에 잔디가 파릇파릇 제 빛을 찾아가자 관심어린 눈길로 바뀌어 갔다.
학생들에게는커녕 문 선생에게조차 인사치레도 없이 일하는 모습만 날카롭게 지켜보던 여 이사장은 어느 날인가 문 선생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다음엔 사택 안으로 초청해 차를 대접했다. 그 후로 문 선생은 사택 안에서 이사장과 무언가 긴 대화를 했고, 학생들만 남아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도록 사택 안에 들어간 문 선생이 나오질 않아 "집에 가도 된다, 가라고 허락할 때까지 남아서 기다려야 한다"고 의견이 분분하던 학생들은 다음날 꾸지람 들을 각오를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으나 다음날 예상했던 야단을 맞지 않아 이상스럽던 기억도 있었다.
그때 반장 자리에 있었던 민기는 일을 마쳤다고 문 선생에게 보고를 해야 했으나 여 이사장과 문 선생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택의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후로 학생들은 정원 작업이 없는 날도 문 선생이 이사장 사택을 찾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고, 문 선생과 좋아지낸다는 소문이 떠돌던 노처녀 가정 선생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민기가 중학을 졸업해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큰 진전이 없었으므로 민기는 그때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관련기사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8]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7]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6]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5]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10]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11]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12]
-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