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신병원만 위기?, 의사 수 OECD 최하위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 1명이 106명 전담하기도
정부, 의대 정원 확대 기조 이어갈까… 논의 중
대한의사협회 “의사 수 확대보다 인프라 구축 필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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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연간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 수가 4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전국 국립정신병원 5곳의 전문의 평균 충원율은 41%에 그치며, 의료 공백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정신과 의사 수는 한국이 0.08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연초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나, 의사단체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현재 인프라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이미 정신질환 안전지대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 수는 405만8855명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전국 국립정신병원 5곳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평균 충원율이 정원의 41%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전국 5개 국립정신병원에서 근무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33명으로 80명 정원의 41.2%였다.

국립부곡병원과 국립공주병원은 각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원 11명 중 3명(27.2%)만 채우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정신건강 컨트롤타워인 국가트라우마센터 등을 운영하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전문의 충원율도 38.4%로 정원 39명의 근무자 15명에 그쳤다. 

국립춘천병원의 경우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8월 병원장이 임기 만료로 퇴직한 뒤 올해 6월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1명도 없었다. 지난 7월에야 신임 병원장이 임명돼 의사 2명이 충원되면서 정원 7명의 42.8%인 3명이 근무 중이다. 국립나주병원은 정원 12명의 75.0%인 9명을 채웠다.

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정신병원은 정부가 해마다 정해주는 인상률 상한 이내로 인건비 총액을 책정해야 한다. 이에 개원한 일반병원이나 민간 대학병원 등에 비해 급여가 적고 의사를 구인하기도 힘들다. 

의료계는 2020년 코로나19 유행 이후 정부가 민간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코로나 환자들을 국립정신병원이 치료하게 한 것도 과중된 업무로 이어져 전문의들이 사직하는 원인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의료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자 입원 환자도 자연스레 감소했다. 국립정신병원 5곳의 연간 입원 환자 수는 2019년 1897명에서 지난해 909명으로 52.1% 줄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정신과 입원 병상 수는 2017년 6만7000개에서 올해 5만3000개로 줄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춘천병원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전체적으로 국립병원이 정신과 의사들을 충원하기 어려움이 있다”라며 “1차적인 이유는 국립병원 의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민간병원 의사와 보수 차이에서 편차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 쪽으로 의사들이 집중되다 보니 인프라 측면에서 열악한 면이 많고, 근처에 의과 대학이 있는 지역이 아니면 정원을 충원하기 어렵다”라며 “국립정신병원들이 외지에 많다”라고 덧붙였다.

취재진의 ‘국립병원 의사들에 대한 정부 보조는 없는가’ 질의에 관계자는 “아무래도 국가 공익기관이다 보니 공무원 보수체계 틀에서 산정되게 돼 있다”라며 “민간하고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병원이 임의적으로 보수를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라고 답변했다.

한편 취재진이 10월13일 오전 11시경 수도권 밀집지역의 민간병원 두 곳의 진료 예약을 문의해본 결과 한 곳은 오후 4시, 다른 한 곳은 익일 오전 9시 진료가 가능했다. 민간병원의 경우에는 원활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국립정신병원만 위기다? 의사 수, OECD 최하위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정신과 의사 수는 2020년 기준 한국이 0.08명으로 그해 통계조사를 한 29개국의 평균 0.18명의 절반 수준이었다.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멕시코 0.01명, 콜롬비아 0.02명, 터기 0.06명 등 단 3곳뿐이다. 2020년 통계가 없는 7개 나라의 최근 수치를 봐도 모두 한국보다 높다. 최근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들의 정신질환 병력이 부각되면서, 체계적인 치료 체계 구축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실제 의료현장은 인력난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정부의 부족한 투자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올해 정부 보건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1.9%(3158억 원) 수준으로 매우 낮았다. 현재 전체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데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처우가 나은 민간병원이나 개원을 선호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서울 시내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은 232곳(76.8%)이나 증가했다. 정신과 의사가 부족한 것과 별개로 정신과 병상 수는 수용·입원 위주의 환자 관리·치료 관행이 영향으로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의사와 달리 병상 수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대 과잉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직원 1명이 106명 관리

정신과 의사 수의 부족, 그에 반하는 과잉 병상이 문제인 가운데, 이를 도울 수 있는 지역사회 정신건강 증진 및 대응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센터) 운영 현황을 살펴봤다. 센터는 정신질환자 등록 및 사례관리, 재활 등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아울러 다양한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 및 상담을 제공해 지역 주민의 정신건강 증진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1998년 모델형 운영사업으로 시작된 센터는 17개 광역센터와 247개 기초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등록 사례관리자는 총 8만7910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보건복지부의 2022년 광역·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별 인력 운용 현황에 따르면, 전체 종사자 4563명 중 정규 및 무기계약직 1563명(34%), 계약·기간제는 3000명(66%)으로 주요 직역 중에서는 사회복지사의 기간제 근무 인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간호사와 임상심리사 등 의료 직군과 달리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사회서비스를 지원하고 상담하는 직역으로, 서비스 대상자의 신뢰 관계 형성이 중요하나 인력 대부분이 기간제로 근무하고 있어 관련 업무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센터별 업무 분담 역시 편차가 심하다. 전국 평균 센터별 종사자는 17.2명, 종사자 1인당 사례관리자 수는 25.3명이었으나, 일부는 1명당 106명까지 전담하는 곳도 있다. 기관에 따라 전국 평균이 2~4배까지 관리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사업마다 필요한 인력도 제대로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불거진 마약류 등 마약중독 문제나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재난에 대한 관리 및 지원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다. 실제 참사가 일어난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용산구정신건강복지센터는 자살이나 재난관리, 위기대응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최 의원은 “정신질환을 경험하거나, 혹은 정신질환자를 가족으로 둔 가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인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인력이 부족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은 큰 문제”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인력 충원 및 지원 계획을 마련하고 정신건강에 대한 다양한 수요가 나오고 있는 만큼 체계를 정비해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역사회 정신건강 증진의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의대 정원 확대로 돌파?, 의사단체 “큰 위협 될 것”

현재 의료 인프라 부족 및 필수의료 공백 문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는 해결책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의사 확충을 돌파구로 정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 초부터 의료계와 협의를 거쳐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해 왔다.

지난 12일 다수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다음 주 윤 대통령이 직접 의대 증원 방침과 규모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미정’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56%는 의대 정원을 300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의대 정원 확대는 2025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료계뿐만 아니라 환자, 전문가 등과 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교환했다”라며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도록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보도설명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내주 후반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일정 등을 발표할 예정’ 내용과 관련해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아직 확정된 바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보건복지부의 보도설명자료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 예정은 사실과 다르고 아직 확정된 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취재진의 ‘연초부터 정부는 의대 정원 확장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데, 의협의 입장은 어떠한가’ 질의에 “당연히 반대고, 여전히 동일하다. 다른 입장은 없다”라고 답변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장에 반대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22년 5200만 명에서 2070년 38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에 반해 의사 수는 매년 3200여 명이 추가로 배출돼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인구대비 의사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OECD 건강통계를 봤을 때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 및 의료접근성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의료기관이 구인난에 허덕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 우리나라의 의사 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의사가 지방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무리하게 의사 수를 늘릴 경우, 해당 분야의 기피현상은 해결되지 못한 채 국민의료비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져 우리나라 의료체계 전반에 큰 위협이 될 것이 자명하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필수의료 붕괴를 막고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은 의사 수 증가가 아니라 국가의 강력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통해 취약지역과 기피분야에 각종 인프라 구축 및 충분한 보상·처우개선과 같이 유인기전을 마련하고, 의사들이 필수의료·지역의료에 자발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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