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쏠림 현상 가중” vs “낙수효과 있다”
위기의 지방 국립대 병원 “지금 늘려도 10년 후 효과”

정부 의대 정원 확대 관련 국회 기자회견. [뉴시스]
정부 의대 정원 확대 관련 국회 기자회견.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의료대란 상황이 가중되고 있다. 23개 진료과목의 수도권 전공의 정원은 50%를 초과하지만, 진료 과목별로 증감 추이는 상이하다. 피부과 성형외과 등 소위 인기과는 전공의 지원율이 150%를 넘는데 반해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외과 등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를 두고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하는 과에 탈락하면 레지던트도 N수”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해결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라는 해답을 내놨지만, 의사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인기 전공과로의 쏠림 현상이 가중될 것”이라는 의견과 “낙수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주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정원확대만이 해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정책적 패키지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공받은 지난 10년 지역별·과목별 전공의 정원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3개 진료과목의 수도권 전공의 정원이 50%를 초과하는 것으로 확인된 반면, 진료 과목별로 증감 추이는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4~2023년까지 10년간 지역별 전공의 정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공의 정원 비율은 서울(39.28%)이 가장 높았고, 경기 17.91%, 부산 7.55%, 대구 6.38%, 인천 4.21% 순을 기록했다. 한편 울산, 전남, 경북,제주 등은 1% 수준으로 매우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의 전공의 정원은 약 61.6%로 확인됐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비율이 약 6:4 수준이다. 전국 전공의 10명 중 6명 이상이 수도권에만 밀집된 상황인 것이다.

더불어 인구 대비 전공의 정원을 비교해 보면 서울은 인구 1만 명당 전공의 정원이 14.1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전 9.3명, 대구 9.1명, 부산 7.8명, 광주 7.2명 순이었다. 반면, 경북은 1.36명으로 서울과 비교했을 때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과목은 진단검사의학과 71.3%였고, 방사선종양학과 69.8%, 영상의학과 66.7%, 산부인과 65.8%, 피부과 65.1%, 외과 64.5% 순이었다. 

2014년 대비 2023년 수도권 전공의 정원 증가가 높은 진료과목은 진단검사의학과 9.6%p였으며, 가정의학과 5.5%p, 방사선종양학과 5.2%p, 핵의학과 3.0%p, 내과 2.5%p, 정형외과 2.4%p 순이다. 

그에 반해 직업환경의학과는 2014년 대비 2023년 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이 11.4%p 감소했다. 이어 안과 –5.1%p, 신경외과 –2.8%p, 정신건강의학과 –2.6%p, 비뇨의학과 –1.6%p, 재활의학과 –0.5%p 등 과목도 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이 감소했다.

이와 관련 신현영 의원은 “수도권 의대와 지역의대 졸업자 수 비율이 4:6 정도인데 전공의 정원은 반대로 6:4 수준”이라며 “지역의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의 전공의 수련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국가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복지부가 수도권과 지역의대 전공의 정원을 현재 6:4 비율에서 5:5 비율로 조정해 지역의 졸업, 수련, 정착의 선순환으로 구조를 유도하려는 취지가 있지만, 의료현장은 혼란스러운 상태”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료계와 협의해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공의 수련과정의 지역불균형이 심각하다는 점은 알고 있다”라며 “지역의 수련과정은 부족하고 환자 쏠림 현상으로 수도권 수련의의 업무 과중이 가중되고 있는 편이다”라고 동의했다. 이어 “수련과정에 대한 속도조절은 현장 의견을 반영해 조절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전공의 쏠림현상, 장관도 상황 이해

수도권 인기과에 집중된 전공의 수련과정 개편 필요성은 계속 지적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며, 선호 진료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조규홍 장관 역시 자신이 의대생이라면 인기과를 택했을 것 같다는 식으로 답해 근본적 해결책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신현영 의원은 조규홍 장관을 향해 “만약 의사라면 무슨 전공과목을 선택하겠느냐”라고 묻자 조규홍 장관은 “근무 여건이 좋고 수익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신현영 의원은 이날 지난 10년 간 인턴, 레지던트 연간 확보 현황 데이터를 제시했다. 복지부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인턴 확보자 수는 3168명으로 전공의 확보자 수인 3285명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018년 인턴 수가 더 많아진 이후 올해는 인턴 확보자 수가 3188명으로 전공의 확보자 수 2888명에 비해 300명 이상이 많아졌다. 신현영 의원은 이와 같은 추세를 인기과와 비인기과 간 양극화 현상과 연관지었다.

실제 2023년도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소위 인기과로 불리는 과들은 150%를 넘는 지원율을 보였지만,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외과 등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신현영 의원은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를 지원하지 않은 젊은 의사가 늘어나는 가운데 전공 선택도 양극화하고 있다”라며 “원하는 과에 탈락하면 전공의 지원도 N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선택을 한 젊은 의사들 개개인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며 “윤석열 정부는 의대정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의대정원이 늘면 인기과목 경쟁도 더 심화될 것이다. 이에 대한 맞춤 대책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의대 졸업 인턴, 레지던트 등을 하지 않고 바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도 “개선을 고민할 때가 됐다”라며 “일본은 급여진료를 할 경우 면허를 획득하고 2년은 병원에서 수련을 반드시 받도록 한다. 우리 정부도 일반의들의 의료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조규홍 장관은 “의대정원 확대만으로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지역과 과목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 정책 패키지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인기과만 몰린다” VS “필수의료 낙수효과 있다”

과목 쏠림 현상이 필수의료 붕괴로 이어지기 전에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추진하려 한다. 하지만 실효성을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이른바 ‘낙수효과’를 둘러싸고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전체 의사 수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낙수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고, 인기과로 ‘쏠림 현상’만 심해질 것이라 주장했다.

이상운 의협 부회장은 “의사 증원으로 반드시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늘고, 지역 의사가 양성된다는 보장이 없다”라며 “오히려 미용성형이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 그때는 정책적 해결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의협 회장인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는 한 언론사 칼럼을 통해 “칼자루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자”라며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전공을 하지 말라는 정부의 강력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필수의료를 포기하고 비급여 시장에 뛰어들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자”라고 말했다.

의사단체의 주장은 의대정원 확대는 현 문제의 해답이 아니며, ‘수가 인상’ 등의 정책적 방안을 통해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훈 부회장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과감한 수가 개선, 환자를 소신 있게 치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 수련비용의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낙수효과는) 미미하다고 봐야 한다”라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원가 보존 즉, 수가 인상을 주장했다.

의협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에게 “정원 확대에 있어서 (의협) 입장은 똑같이 반대다”라며 입장을 고수했다. 이어 “지방의료기관이 구인난에 허덕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의사 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의사가 지방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필수 및 공공의료 분야의 인력부족 문제는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닌 정부의 제대로 된 의사 인력 수급 정책 부재와 지역 및 의료취약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 등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필수의료 붕괴를 막고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은 의사 수 증가가 아닌 국가의 강력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통해 취약지역과 기피분야에 각종 인프라 구축 및 충분한 보상·처우개선과 같은 유인기전을 마련하고, 의사들이 필수의료·지역의료에 자발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기의 지방 국립대병원 “당장 정원 늘려야 한다”

반면, 의료 인프라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 국립대병원을 포함해 일각에서는 낙수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며, 의대 정원은 당연히 늘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국장은 “의사가 충분하게 추가되면 내부 경쟁과 수요·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따라 적절히 배분될 수 있다”라며 “낙수 효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무한정 의사들이 몰릴 수는 없기에 결국 인기과가 포화 상태가 돼 이점인 수익성이 저해되면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이 이동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은 경제 기조에 따라 수익이 변하는 업종이라 불황과 의사 공급 확대가 겹칠 경우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경험과 소신에 비춰 의료인력 확충은 100% 필요하며, 지금 해도 늦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지금 확대해도 현장에 배출되는 시기는 앞으로 10년 후이며, 현장에서는 10년 후까지 어떻게 버티느냐를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양동헌 경북대병원장도 “지역 필수의료와 중점 의료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지방 의료기관은 3~4억 원의 고액 연봉을 줘도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져, 지방 의료 인프라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신현영 의원, 의사정원 추계는 과학적 근거로

신현영 의원은 단순 의대 정원 확대가 아닌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의사정원 추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보건의료인력수급추계지원위원회’를 설치하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다.

의료인력 양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적정한 의료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의료인력 수급 계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관련한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 연구마다 사용하는 근거지표와 방법론이 상이하다. 

이와 관련 신현영 의원은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정확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를 위해서는 단순히 연구자의 개인적 판단이 아닌 다양한 지표와 근거를 토대로 전문가들의 종합적 분석이 필요하다”라며 “필수의료 붕괴와 의료취약지 인프라 격차 문제 개선은 정치적 판단이 아닌 정책적 근거 하에 조정된 의사정원을 통해 완성시킬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전문가 위원회를 통해 의대 정원 확충이 필요할 땐 늘리고, 감축이 필요할 땐 줄이는 기전을 마련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공의 쏠림 현상과 더불어 필수의료 붕괴가 예상되는 가운데, 의사정원 확충을 두고 정치적 공방전만 오고 가는 상황이 아니냐는 비판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적절한 대처와 맞춤형 정책으로 이번 의료대란 상황이 무사히 종료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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