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30년째 동결” 전공의 지원자 143명 중 2.8% 지원
10년간 지적돼 온 의료계 문제… 눈과 귀 닫은 관계 부처

조규홍 장관,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브리핑.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브리핑. [보건복지부]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오랜 진료비 동결과 열악한 환경, 저출생 문제가 지속되면서 소아청소년과 의료체계가 붕괴 위험에 빠졌다. 정부는 의료공백을 우려해 올해 세 번째 소아청소년과 관련 대책을 내놓았지만, 의료계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10년 정도 개선 요구의 목소리를 냈으나 미온적이었고, 결국 소아청소년과 유지가 한계에 달하자 정부가 임기응변식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그 대책마저도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평이 나오는 가운데,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우선 현 대책을 구체화하고, 의료계와 소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저출생·저수가가 심화되면서 소아과 진료체계가 붕괴할 위험에 빠졌다. 정부는 의료공백이 우려되자 부랴부랴 올해에만 세 번째 소아청소년과 관련 대책을 내놓았지만, 의료계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의료계에서는 7년 전부터 소아청소년과 상황 개선을 강하게 촉구했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현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정부는 야간·휴일 진료 가산을 비롯해 소아청소년 전문의에 별도 정책수가를 전공의에게는 월 100만 원의 수련수당을 지원하는 등 보상을 대폭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두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이번 대책을 통해 소아청소년 의료공백을 메꾸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소아의료 보완대책에는 올 상반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요구가 일부 반영됐다. ‘소아연령 입원가산 확대’, ‘전공의 수련지원금 지원’, ‘야간·휴일 가산 확대’ 등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굉장한 미비한 수준이며, 턱없이 부족한 해결방안이라고 일갈했다.

복지부는 이번 보완대책을 통해 소아의료 인프라를 유치·확충하고 의료인력 이탈을 최대한 막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소아과 폐과가 계속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이 최종적인 문제 개선 방안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대책 발표 후 여론은 싸늘하다.

정부의 지난 대책, 소아과 저평가?

정부는 지난 1월 필수의료 대책, 지난 2월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내놓았다. 1월 대책은 상급종합병원 지정 및 평가 기준의 예비지표에 24시간 소아응급 의료서비스 제공 여부와 소아응급 전담 전문의 배치 여부 등을 담기로 했었다.

이어 중증소아 전문 치료기관인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의 의료손실을 사후 보장하는 시범사업과 야간·휴일 달빛어린이병원 확충 및 보상 강화 등이 담겼다.

2월 대책에는 소아 중증·응급환자의 심야·휴일 진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아울러 신생아실 입원수가 개선, 소아 입원 시 연령 가산 확대, 소아 진료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은 줄어들지 않는 추세다. 저출생 심화로 소아의료 수요가 감소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의료계는 소아청소년 수가가 근무여건과 중요도에 비해 매우 저평가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 “저출산 흐름, 낮은 진료비, 수입 감소” 지적

지난 9월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대책 마련’ 토론회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과중한 업무, 낮은 보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부담으로 필수의료 내 전공의 지원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저출산 흐름, 낮은 진료비, 수입 감소’ 등 열악한 소아청소년과 환경을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려워 ‘폐과’를 선언했다. 임현택 소청과 회장은 “소아청소년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됐고, 이 또한 동남아 국가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호소했다.

실제 우리나라 의료수가 수준은 미국이 100이라면 48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OECD 평균 72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1977년 의료 보험 제도 도입 당시 ‘저수가·저급여’를 원칙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랜 개선의 목소리에도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동결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소아청소년과 붕괴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5월 서울연구원이 공개한 ‘2022년 서울시 개인병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이후 5년간 가장 많이 줄어든 진료과목은 소아청소년과로 드러났다.

2017년 521개에 달하던 소아청소년과 개인병원은 2022년 456개로 12.% 가까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정신건강의학과가 76.8% 증가했고, 마취통증의학과가 41.2%, 흉부외과가 37.5% 늘어난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런 기피 현상은 의과 대학 내부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2023년도 하반기 과목별 전공의 모집이 완료된 가운데,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한 전공의는 143명 모집에 4명(2.8%)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신규 지원자 감소로 소아청소년과 내 전체 전공의 수도 높은 감소세를 보였다. 2018년 101%를 기록했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올해 들어 16.3%로 급감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가 어려워진 만큼 의료기관의 정상적 운영과 유지도 제동이 걸렸다.

의료계, “정부 일회성 대책으로 끝내면 안 돼”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지난 2월 대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보상수가는 지원요구액의 10%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에 기본입원수가 인상, 전공의 수련지원금 지원으로 보상액을 높일 것을 제안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전문의 진료체계를 확보해 전담전문의가 중환, 응급, 고난이도 수술을 전담하고, 전공의는 질 높은 수련에만 집중한다면 소아청소년과 진료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은 “현재 국내에서 소아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10개 내외”라며 “현재 전국적으로 소아흉부외과를 갖춘 병원이 거의 없고 지역으로 갈수록 그 차이가 뚜렷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미 10년 전부터 소아과가 위기라는 말만 계속해서 반복됐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라며 “수가 문제 해결을 비롯한 정부 대책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은 “필수의료 인력에 수요가 많으니 그에 맞춰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단순한 접근은 위험하다”라며 “한정적인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규제가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일요서울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이번 3차 대책에 대한 입장’에 대해 “더 이상은 기대할 것조차 없다”라며 “100만 원씩 지원금을 더 주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 되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이런 상황이 온 것은 절대 저출생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현재까지 의사회 회장직을 8년째 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정부에 빨리 근본적인 개선이 되지 않으면 과가 없어질 것이라고 누누이 얘기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귀 기울인 적이 없으며, 결국에는 지금 붕괴 중이 아닌 이미 붕괴가 됐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 서울에서 진료되는 데가 서울대병원하고 서울아산병원 두 군데 남았는데, 이마저도 4년차 전공의가 나가는 내년 1월이 되면 진료가 안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결국 전국 모든 병원의 소아청소년과가 진료 마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데 지난 9월 대책을 형편없게 내놓았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호소했다.

임 회장은 “얼마 전에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했는데, 로이터 통신 자체 조사에 따르면 호주의 소아청소년과 진료비는 29만 원, 미국은 27만 원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1만3000원이다. 결국 (소아청소년과가) 유지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 액수를 50년 동안 받았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의사도 만족을 못 하고, 환자도 만족을 못 하는 즉, 누구도 만족을 못 하는 제도가 됐다”라며 “이 상황을 50년 가까이 버티나가 가장 취약한 과인 소아청소년과부터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소아청소년과는 수입 자체가 정부에서 주는 수입밖에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이번 3차 대책도 기존에 발표했던 대책을 보완해서 내놓은 후속 대책이다”라며 “이 대책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일단 신속하게 추진을 하고 구체화해야 하는 게 우선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책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추진하면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라며 “계속 학회나 의사회의 얘기를 들어야 하고, 그렇게 조금씩 보완해 나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소아청소년과가 처한 상황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대책과 관련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청취했고, 반영했는지 의문을 품는 가운데, 의료계는 이번 대책에 큰 실망감을 보였으며, 결국 내년 더 악화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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