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한 채’ 가격…국내 최초 프리미엄 세단 ‘각 그랜저’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를 비롯해 전기차·수소차까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신차를 줄 세우듯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새 차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오랜 기간 차량을 운행하고 접해온 마니아들에게는 올드카에 대한 로망이 꿈틀거릴 때도 있다. 시내 주행을 하다보면 한때 가성비의 대명사였던 기아자동차(기아로 변경)의 1세대 프라이드나 대우자동차(한국GM의 전신) 티코, 현대자동차의 1~2세대 그랜저 등을 가끔 만날 수 있다. 영화 ‘택시’와 TV 드라마 ‘응답하라’를 통해서도 알려진 포니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이 가운데 이번 추억의 차 코너에서는 1세대 그랜저를 골랐다.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영현대]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현대차 ‘L카 프로젝트’ 그랜저(GRANDEUR)

앞서 현대차는 1976년 2월 미쓰비시모터스(이하 미쓰비시)와 기술 협약을 맺고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로 개발된 승용차 ‘포니’를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후 차종을 늘리며, 1983년 스텔라에 이어 1986년 일명 ‘각 그랜저’란 별명으로 불리는 최초의 그랜저를 개발해 시판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현대차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1세대 그랜저의 탄생을 위해 당시 ‘L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된 바 있다”며 “그랜저는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개발에 성공한 모델로, ‘웅장·위엄·위대함’이라는 뜻을 담아 그랜저(Grandeur)로 명명됐다”고 말했다. 

이어 “1세대 그랜저는 각 그랜저라고 불릴 만큼 직선이 강조된 강인한 이미지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2000/2400/3000cc 등 세가지 모델로 구성됐었다”라면서 “당시 국내 대형 승용차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총 9만2571대가 판매됐다”고 말했다. 

국산 대형차 최초로 전륜구동 방식이 채택됐다. 대형다운 넓은 실내 공간을 구현했고 처음에는 2000cc 시리우스 SOHC MPI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 적용으로 120마력 성능을 보유했다. 후기 모델로 넘어오며 2.4리터 엔진에 4단 자동변속기가 추가됐다.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또 당시 파워윈도우와 전동 사이드미러 채택으로 ‘최첨단을 달리는’ 최고급 승용차로 부의 상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가 대우자동차를 넘어 대형차 시장 장악에 나선 계기가 됐다. 

1세대 그랜저의 가격은 일반인이 거들떠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첫 출시된 2000cc 모델 가격은 1700만 원에 이르렀다. 이후 출시된 2.4리터, 3리터 모델은 2100~2900만 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당시 인기가 높던 중·저가형 차량 가운데 현대차 엑셀이 약 400만 원, 기아차 프라이드가 330만 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7~9배 가격이다.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영현대]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영현대]

은마아파트보다 비싼 1세대 그랜저의 가격

수년 동안 재개발·재건축 등 부동산 이슈의 중심에 있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2022년 4월 기준 면적 101㎡(31평형) 매물이 25억 원에 올라와 있는데, 1980년 분양 당시 가격이 2100만 원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세대 그랜저의 가격을 가늠할 수 있다. 

현대차 그랜저 1세대는 명실상부 국내 완성차업계에서 내 놓은 최초의 프리미엄 세단으로 고급 승용차의 최고봉에 오르며 부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빠차가 아닌’ 이른바 ‘사장님 차’로 군림하면서도 당시에 인기가 높았다. 기자에게도 초등학교·중학교 시절, 예식장과 목욕탕을 운영하던 동창의 아버지가 몰고 다니던 차로 기억에 남아있다.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이창환 기자]

현대차에 따르면 클래식한 느낌을 중시한 모델로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각진 외관으로 다부진 느낌을 연상시켰다. 복고 스타일이지만 출시 당시에는 가장 ‘트렌디’ 했던 자동차다. 안개등과 헤드램프부터 범퍼,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모두 사각형으로 각이 진 형태다. 후면에서 보이는 전체 프레임은 왜 1세대 그랜저가 ‘각 그랜저’라는 별명을 얻었는지 알려준다.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추기 모델의 후면 모습. 초기 모델과 달리 후면 가운데 부분의 반사경이 한 줄로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현대차 1세대 그랜저 후기 모델의 후면 모습. 초기 모델과 달리 후면 가운데 부분의 반사경이 한 줄을 띠고 있다. [이창환 기자]

공업사 사장님들 사이에서는 1세대 그랜저 수리 이야기가 종종 안줏거리로 올라오기도 한다. SNS를 통해서 만날 수도 있다. 시승을 하며 지난해 12월과 지난 3월에 만났던 1세대 그랜저를 사진으로 남겼다. 지난해 12월 영동고속도로에서 만났던 그랜저는 1세대 초기형 2.4리터 모델이었고, 지난 3월에 강원도 영월에서 만났던 그랜저는 1세대 후기형 모델로 추정된다. 

지난해 ‘현대모터스튜디오(고양)’에서 1세대 그랜저가 전시된 바 있으나 현재는 남양연구소에 1대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자동차마니아 및 올드카 수집가 사이에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해 향후 기회가 된다면 직접 시승기를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영현대]
현대차 1세대 그랜저. [영현대]

※ 차량 사진 가운데 엔진 및 실내 사진 등은 구리시 ‘동구1급자동차공업사’에서 협조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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