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MDL 239km 11개 사단, 강화도 255km 1개 사단…대비 ‘뚜렷’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지난 1991년 5월16일, 나는 강화도에서 北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갔고, 돌아올 때는 공작(工作) 모선을 타고 공해상으로 나가 황해를 돌아 제주도 남쪽까지 다다랐다.” 이는 ‘北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南 지하혁명당인 민족민주혁명당의 중앙위원장’이었던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의 회고록 일부 내용이다. 그로부터 30년 만인 지난달, 또다시 월북(越北)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강화도 군 경계철책의 하단 배수로를 통해 북한으로 월경했고, 결국 해당 작전지역 군 지휘관이 문책을 당했다. 모든 책임이 온전히 그에게만 있을까.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접경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18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2020.06.18. [뉴시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접경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18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2020.06.18. [뉴시스]

 

- 지자체 철책제거 ‘혈안’, 철책 ‘무용(無用)’…월북 책임 뒤집어쓴 해병대

최근 강화도에서 24세 탈북(脫北) 청년의 월북(越北) 사건이 발생했지만, 정작 정부는 넋 놓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해당 사건은 지난달 26일 北 조선중앙통신의 “월남(越南)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19일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는 보도를 통해 월북 사실을 알았다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시인’으로 여론은 더욱 사나워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31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김 씨의 월북 사태를 전면 공개해야 했다. 합참이 이날 밝힌 사건의 전말은 지난달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합참이 이날 공개한 열 영상장비(Thermal Observation Device, TOD)에도 일부 기록됐다. 김 씨는 이날 오후 6시25분경부터 7시40분까지 교동도와 강화도의 해안도로 등 지형을 정찰했고, 다음 날인 18일 오전 2시23분쯤 강화도 북부 연미정에 도착해 2시34분 연미정 일대 철책 하단부 배수로(가로 1m84㎝, 세로 1m76㎝, 길이 5.5m)를 향해 이동했다. 그는 이곳의 윤형 철조망과 침투 저지봉을 뚫고서 자유의 마지막 경계선을 넘은 것이다.
 

지난 18일 월북한 탈북민 김모(24)씨는 강화도에서 배수로를 통과한 뒤 조류를 타고 북한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2020.07.31 [뉴시스]
지난 18일 월북한 탈북민 김모(24)씨는 강화도에서 배수로를 통과한 뒤 조류를 타고 북한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2020.07.31 [뉴시스]



강화도 월북 사건은 곧 군에 대한 정치권의 집중 포화로 이어졌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계태세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고 명명백백 밝혀 신상필벌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희 민주당 의원도 “최근 김포·강화 등 한강하구에서 귀순이 반복된다”며 “김포·강화 지역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종합 매뉴얼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합참은 ‘해병대 사령관과 수도군단장’에 엄중 경고를, 해병 2사단장에는 ‘보직 해임’을 밝혔다. ‘김포·강화 지역 경계 강화’를 요구한 황희 민주당 의원의 지적처럼 경계 작전 실패의 책임은 모두 해병대 2사단장을 겨냥했다. 그런데, 정말 그 책임이 오로지 군으로 국한될까.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2020.07.28.[뉴시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2020.07.28.[뉴시스]

 

지상MDL 239km 11개 사단, 강화도 255km 1개 사단?

지상의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MDL·Military Demarcation Line)의 전면부 239km에 달하는 구역에 대해 군이 경계 작전을 맡고 있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 걸쳐 총 11개 육군 사단급 부대가 실제 작전에 투입된 상태다. 경계 작전은 군단장이 작전 총괄 책임자로 돼 있다. 이는 군단 단위 ‘경계작전지침서’와 사단 단위 ‘위기조치예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월북 사건의 핵심은 바로 강화도와 한강 하구로 통칭되는 이른바 ‘해·강안 지역’에 있다. 강화도와 한강 하구가 유일한 ‘해·강안 경계 작전 지역’인데, 지난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제5항에 따르면 ‘한강 하구 수역으로 그 한쪽 강안이 일방 통제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 통제하 있는 곳은 쌍방 민간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고 명시됐다.

그런데 문제는 해병 1개 사단인 2사단이 무려 255km에 달하는 김포·강화 등 한강 하구 지역에 대해 단독으로 경계 작전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육군 11개 사단이 지상의 군사분계선 전면부 239km에 대해 작전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굉장히 어려운 여건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접경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18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2020.06.18. [뉴시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접경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18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2020.06.18. [뉴시스]

 

강화도는 뚫렸는데…지자체는 철책 제거

국방부는 이미 지난 2018년 12월, ‘2019 업무보고서’를 통해 ‘국민의 편익 증진 및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올해까지 총 170km의 해·강안 경계철책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그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방부가 공동 마련한 ‘유휴 국방·군사시설 관련 국민 불편해소 개선방안’에서 ‘해·강안 경계철책(413.3km)’ 중 114.62km는 이미 철거 승인이 됐는데, 여기에 169.6km가 포함돼 올해까지 284km를 철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휴 시설 철거까지 포함하면 내년까지 무려 3552억 원의 ‘철거비용’이 소요된다. ‘강화도 월북(越北) 사태’를 논하기에 앞서 이미 2년 전 국무총리 소속의 합의제 행정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까지 개입돼 경계철책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방부 단독 행위라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한강 하구'에 대한 정부의 정책 중 하나는 바로 '철책 제거'다. 대표적으로 경기도는 지난 2018년 '경기도 민선 7기 공약실천계획서'를 통해 73번째 공약(남북공동수계 관리 추진 및 남북교류협력 강화)으로 '한강하구 일대에 설치된 22.6km에 달하는 철책선 제거'를 약속했다. [경기도 공약집]
'한강 하구'에 대한 정부의 정책 중 하나는 바로 '철책 제거'다. 대표적으로 경기도는 지난 2018년 '경기도 민선 7기 공약실천계획서'를 통해 73번째 공약(남북공동수계 관리 추진 및 남북교류협력 강화)으로 '한강하구 일대에 설치된 22.6km에 달하는 철책선 제거'를 약속했다. [경기도 공약집]

 

그런데 ‘해·강안 경계철책 철거’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심 또한 지대하다. 특히 경기도는 지난 2018년 ‘경기도 민선 7기 공약실천계획서’를 통해 ‘철책 제거’를 경기도민에 약속했다. ‘남북공동수계 관리 추진 및 남북교류협력 강화’라는 ‘공약실천계획서 73번째 공약’은 바로 ‘한강하구 철책(22.6km) 제거’다. 고양구간 12.9km 중 잔여구간 9.6km와 김포구간 9.7km 중 잔여구간 8.4km에 대해 각각 146억 원, 228억 원의 철거비가 책정됐다. 총 374억 원(국비 76억 원, 도비 37억 원, 시·군비 261억 원)을 ‘경계선 허물기’에 투입하겠다는 심산이다.

경기도가 밝힌 ‘한강하구 철책제거’의 이유는 ‘안보환경 변화, 지역발전’에 있다. 경기도는 “분단·냉전의 상징인 한강하구 철책의 제거를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할 것”이라며 “남북 간 안보·군 작전 환경 변화를 고려해 한강 철책 잔여구간을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강하구 철책 제거’에 따른 기대효과는 “경기도민의 생활 불편 해소 및 휴식공간 제공”이라고 했는데, 북한의 침투와 월북(越北)을 막고자 세운 경계 철책이 ‘도민의 생활 불편의 근원’이라는 논리다.
 

일요서울이 지난해 중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기도와 한강유역청 등 정부기관에서 확인된 결과에 따르면 당시 고양시 구간의 12.9km는 이미 철책선 제거를 완료했다. 다만 김포시의 경우 소송 등으로 인해 당시 1.3km만 제거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일요서울]
일요서울이 지난해 중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기도와 한강유역청 등 정부기관에서 확인된 결과에 따르면 당시 고양시 구간의 12.9km는 이미 철책선 제거를 완료했다. 다만 김포시의 경우 소송 등으로 인해 당시 1.3km만 제거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일요서울]

 

일요서울이 지난해 중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기도와 한강유역청 등 정부기관에서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고양시 구간의 12.9km는 이미 철책선 제거를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7월 기준으로 약 1년 전의 공개된 정보로, 한강 하구 철책 제거 현황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 2월 경기도가 밝힌 ‘2020년 도정 업무계획’에 따르면 ‘경계’ 본연의 목적과는 반대로 가는 양상이다. 이 계획서에는 ‘한반도 평화협력 기반 조성’ 항목을 제시, ‘남북평화시대 대비 통일기반시설 조성 및 공감대 확산’을 명목으로 ‘한강하구 남북공동수역의 평화적 활용 추진 및 남북공동조사’ 등 4개 분야 15개 사업에 대해 ‘단계적 추진’할 것을 밝힌 상태다.
 

경기도는 지난해 10월17일 오전 경기도청 북부청사 상황실에서 '한강하구 남북공동수역의 평화적 활용을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대표적으로 '한강하구의 제도적 관리대안 및 법적 요건 연구, 한강하구 생태자원 특성 남북공동조사, 한강하구 수산자원 현황 파악 및 남북공동 활용, 한강하구 중립수역 남북공동 람사르습지 등재 및 관리'와 '남북 연결도로 건설, 남북 수산협력, 남북경협 활성화 위한 자유무역지역 지정' 등이 있다. DMZ·한강하구 관리 전담 기구인 'DMZ·한강하구 관리청 설치' 또한 제시됐다. [경기도 제공]
경기도는 지난해 10월17일 오전 경기도청 북부청사 상황실에서 '한강하구 남북공동수역의 평화적 활용을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대표적으로 '한강하구의 제도적 관리대안 및 법적 요건 연구, 한강하구 생태자원 특성 남북공동조사, 한강하구 수산자원 현황 파악 및 남북공동 활용, 한강하구 중립수역 남북공동 람사르습지 등재 및 관리'와 '남북 연결도로 건설, 남북 수산협력, 남북경협 활성화 위한 자유무역지역 지정' 등이 있다. DMZ·한강하구 관리 전담 기구인 'DMZ·한강하구 관리청 설치' 또한 제시됐다. [경기도 제공]

 

월북 사태 터지고서 軍에 ‘책임 전가’ 논란

월북(越北) 사건이 터진 강화도 또한 불과 2달 전까지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따른 접경지역’이라며 ‘민족 동일성 회복 및 화합의 기반 공간 마련을 위한 남북평화센터 및 강화평화전망대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인천시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인 ‘서해평화협력벨트’ 조성 등과 연계해 약 112.74km에 달하는 강화도와 北 개성·해주를 잇는 ‘서해남북평화도로’ 추진에 무려 1조7922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즉, 해병2사단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의 ‘남북 화해 분위기’에 맞춰 ‘경계철책 철거’로 모아지는 형국이다.
 

인천시가 밝힌 '영종~신도~강화~개성~해주를 잇는 서해남북평화도로 건설'에 관한 공약 문서다. 이 사업에 따르면 무려 총액 2조4322억원을 들여 영종도와 강화도, 개성과 해주를 잇는 '서해남북평화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인천시]
인천시가 밝힌 '영종~신도~강화~개성~해주를 잇는 서해남북평화도로 건설'에 관한 공약 문서다. 이 사업에 따르면 무려 총액 2조4322억원을 들여 영종도와 강화도, 개성과 해주를 잇는 '서해남북평화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인천시]

 

한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정책연구실 등에서 발간된 ‘군 경계철책 철거 전 사전 대비 필요 보고서’에 따르면 “경계철책이 지녔던 순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철책 철거 이후 발생할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지난 5일 해군 출신의 국회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휴전선보다 긴 255km의 강화도를 1개 사단이 경계 중인데,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경계가 힘들 수 있다”며 근본 대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김병주·황희 민주당 의원이 강조한 ‘종합 매뉴얼’에는 지자체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일까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접경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18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2020.06.18. [뉴시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접경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18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2020.06.18.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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