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예정된 수순’…‘北 김정은 式 비핵화’ '주한미군 축출' 첫단추 꿰다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주기를 맞았지만, 위태로움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는 북핵(北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다음날인 지난 16일,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당초 거론되던 ‘북한 비핵화’는 자취를 감췄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저의와 한반도의 현 주소를 알아보고자 지난 1987년부터 30년 동안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에서 북한 정보를 다루었던 곽길섭(60) 분석관을 찾았다. ‘북한연구분석’에 평생을 바친 곽 분석관을 일요서울이 지난 17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 만나봤다.
-한반도 비핵화(非核化) 이은 핵 군축 협상 ‘우려’…궁극에는 ‘주한미군 철수’
-北 김여정의 지시가 있은 직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북한의 대(大) 전략 차원에서 설정된 최종 목표를 향한 과정의 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즉, 빙산의 일각을 본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 부분이 아니라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는 북한의 저의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지시한 北 김여정이 지금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집중하지만, 70년 동안 이어졌던 북한의 대남전략사(史)와 핵 전략을 고려한다면 이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앞서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이번 사태를 기획했다. 그동안 대북 전단은 꾸준하게 살포돼 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왜 문제를 삼겠는가. 북한이 수십 년 동안 개발했던 핵(核)이 완성 단계에 다다른 ‘변곡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상황에 대한 현 단계의 진단이 시급하다. 어떻게 보는가.
▲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심각함을 느껴야 한다. 이미 북한은 6번에 걸쳐 핵 실험을 강행했다. 핵 병기의 위협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핵 개발과 제재 상황이 공회전하면서 북한 핵무기의 위협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보유 중인 핵을 이용해 도발과 대화를 협상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先) 도발 후(後) 대화’를 통해 승부수를 띄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17년 강경 태세를 취하다가 2018년 평창 올림픽이라는 변곡점에 맞춰 대화 태세로 전환했다. 국내외에서는 ‘북한 비핵화’가 코앞에 있는 것처럼 선전했는데, 북한 비핵화가 성공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北 김정은 방식의 비핵화’는 보다 앞당겨진 상태다. 바로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다.
-‘北 김정은 방식의 비핵화’란 무엇인가.
▲ 비핵화를 하되, 김정은 방식의 비핵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한 체제가 통제하는 핵무기의 제거가 아니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축출이다. 바로 北 김정은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단계다. 이 단계까지 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對) 중국 전략과도 맞닿아 있어 시간이 결코 짧지 않게 소요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핵실험을 수차례 강행한 북한은 ‘운반 수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동식 지상 발사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개발 중인데, 그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이다. 동해를 거쳐 공해상에서 발사하게 될 경우 미국령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이 성공하게 되면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왜 SLBM이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가. 이것이 북한의 대남전략과 핵전략과 무슨 연관이 있나.
▲ 개별적으로 SLBM 위협과, 대남전략, 비핵화 등을 따지기보다는 모두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다. 바로 北 김정은이 주도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이은 ‘핵군축’ 사태가 우려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수 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 핵을 운반할 가공할 수단은 SLBM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도 핵을 갖고 있는데, 북한은 대등한 지위를 인정받아 ‘상호 핵군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핵 협상 과정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할 것으로 분석된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무려 70년 동안 최고 지향점인 조선노동당 규약에서부터 ‘민족해방’을 강조해 왔다. 이른바 미군 철수를 뜻하는 ‘외세 배격’ 기조다. 게다가 ‘민족자주·민족대단결’을 꾸준하게 주장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3가지(SLBM·대남전략·비핵화)를 관통하는 ‘저의’인 셈이다.
-현 국면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또한 했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 북한의 대남전략은 이미 오랫동안 기본 패턴을 갖춰왔다. 다만, 우리는 단편적인 현상에 집중하면서 전체적인 궤도를 이탈했다. 이미 수많은 징후가 있었다. 바로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방식을 보고도 우리는 대응이 늦었다. 다이너마이트 공법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즉, 우리를 향한 무력도발 의지를 확고하게 나타낸 것이다. 북한이 대결 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즉 어떤 형태의 도발도 불사하겠다는 것인데, SLBM 도발이라도 강행하면 北 김정은 방식의 비핵화 전략은 목표 달성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반면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 평화롭게 살자고 손을 내민다면, 과연 北 김정은이 이를 받아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은 단편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정작 필요한 비판은 하지 않는데, 자꾸 북한에 대해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른바 ‘내재적 관점’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우리와 손을 잡지 않는가. 바로 주한미군 철수를 뜻하는 北 김정은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김정일 체제의 북한과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대남전략에서의 강도와 형태가 다른 것 같다. 이유를 설명해 달라.
▲ 北 김정일의 경제개발 노선이나 핵전략의 표출 강도를 보더라도 北 김정은이 보이는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벼랑 끝’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과감하거나 결단성의 강도가 높아보인다. 선군체제에서 선당체제로 돌아섰는데, 특히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北 김여정의 존재만 하더라도 선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었는가. 게다가 거점 시찰의 방식도 즉흥성이 높아지면서 체제 압박 및 대외 공세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김정은은 자기의 아버지였던 김정일을 싫어했던 것일 수 있다. ‘선대의 혁명성을 존중하라’는 영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권력을 통해 선대를 계승하지 않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자 출신인 김정은이 자신의 이복 형인 김정남을 살해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열등의식)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 장면을 통해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했으나 한반도는 더 큰 격랑에 빠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우리는 북한 비핵화 의제에서 당사자 국이다. 특히 북한을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정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6·25 전쟁 70주년인데, 북한을 상대로 아직 말도 못 꺼낸 문제들이 많다. 핵 문제를 비롯해 ‘6·25 전쟁 납북자’, ‘국군포로’는 아예 언급조차 못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고민이 절실하다. 北 김여정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으로 알려진 ‘대북(對北) 전단(ビラ·Bill·삐라)’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표현의 자유’와도 맞닿아 있는데도 북한에는 침묵하면서 우리 국민이기도 한 애꿎은 탈북민들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았는가.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누려 온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공격받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데, 앞으로 이를 어떻게 지켜나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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